철책선 지키던 연대장에서 밤나무 지키는 농부로… 96년간 이어온 정직한 농장, 시흥 ‘계수밤농장’ 류태덕 대표

밤·고구마·땅콩·배추까지, 아이들이 직접 캐보는 계절 농장

서울에서 차로 30분 남짓. 가을이 깊어질수록 이곳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 찬다. 시흥 계수밤농장이다. 예약 시작 10분 만에 마감되는 체험 농장, 별도의 광고 없이 입소문만으로 성장한 곳이다.

 

▲ 시흥 '계수밤농장' 

 

이 농장의 역사는 약 1세기에 가까운 세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류태덕 대표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땅이다. 류 대표가 장손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은 건 1983년, 군 복무 중이던 시절이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손주한테 넘기라고 하셨어요. 옛날에는 장손한테 물려주곤 했죠.”

 

▲ 사진 = 가을이면 밤 체험을 진행한다.

 

그렇게 이어받은 약 2만 평의 땅은 세월을 거쳐 서울 근교 대표 체험형 밤 농장으로 자리 잡았다.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공간이 아니라, 세대가 이어지는 터전이 된 셈이다.

 

▲ 사진 = 계수밤농장

 

처음부터 체험 농장이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밤나무는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농장을 운영한 건 전역 이후다. “처음엔 밤을 따서 공원에 가서 팔았어요. 수레에 싣고 ‘밤 사세요’ 하고 다녔죠.”

 

▲ 사진 = 계수밤농장

 

그러나 단순 판매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그러던 중 대전에 사는 딸의 권유로 인터넷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계속되는 문의로 ‘주말 밤 수확 체험’을 오픈했고,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 사진 = 계수밤농장 겨울 풍경

 

도시에서 밤을 직접 따본 경험이 없는 가족들이 하나둘 방문했고, 아이들은 떨어진 밤송이를 집게로 집어 들며 새로운 경험에 눈을 반짝였다. 그렇게 체험 농장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21년째다.

 

▲ 사진 = 밤농장 입구 백일홍 꽃길

 

계수밤농장의 가장 큰 강점은 접근성이다. 충주나 공주까지 두 시간 넘게 이동하지 않아도, 서울 남부권에서는 30분이면 도착한다. 9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운영되는 밤 수확 체험은 완전 예약제다. 차량 기준 하루 250대만 받는다. 한 가족 평균 4명만 잡아도 하루 천 명 규모다.

 

▲ 사진 = 계수밤농장

 

“예전엔 인원 제한을 안 했어요. 100대, 150대, 나중엔 천 대까지 왔죠. 길이 1km 넘게 차가 늘어섰어요. 그래서 예약제로 바꿨습니다.” 주차 공간이 한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예약 공지를 올리면 10분 안에 마감된다. 그는 웃으며 “감사하게도 입소문만으로도 매년 많은 분이 찾아주신다”고 말한다. 실제로 SBS 전국 명소로도 소개되며 더 많은 방문객이 몰렸다.

 

▲ 사진 = 계수밤농장

 

계수밤농장은 별도의 체험비를 받지 않는다. 딴 만큼만 계산한다. 1kg에 1만 원이다. “다른 데는 체험비를 받아요. 우리는 안 받아요. 5천 원어치만 사가는 사람도 있고, 20kg씩 사가는 사람도 있어요. 형편 따라 사가면 되죠.”

 

▲ 사진 = 계수밤농장 고구마 체험

 

그는 농장을 찾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지켜봤다. 벤츠를 타고 와 1만 원어치만 사가는 이도 있고, 걸어서 와 조금만 사가는 이도 있다. 그러나 차별하지 않는다. “어려운 사람은 어려운 대로, 형편 되는 사람은 되는 대로. 그냥 다 받아들여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오는 거예요.” 그 ‘정직함’이 입소문을 만들었다.

 

▲ 사진 = 계수밤농장 고구마 체험

 

농장은 밤 수확에만 머물지 않는다. 고구마 3천 평, 땅콩밭, 배추와 무, 감나무와 대추나무까지 계절마다 체험할 수 있는 작물들이 있다. 아이들은 밤을 줍고, 고구마를 캐고, 땅콩을 뽑는다. 배추 한 포기를 안고 가며 “이건 내가 캔 거야”라고 말한다. 도시에서 보기 힘든 장면이다.

 

▲ 사진 = 계수밤농장

 

장갑과 집게는 농장에서 제공한다. 장화는 비 오는 날만 필요하며, 운동화만으로도 충분하다. “서울 아이들은 따본 적이 없잖아요. 감도 따보고, 무도 뽑아보고. 그게 추억이 되는 거죠.”

 

▲ 사진 = 계수밤농장

 

지난해는 유난히 주말마다 비가 내렸다. 예약을 받아도 방문객이 오지 못했다. 3,500평 고구마밭은 제때 수확되지 못했고, 결국 포크레인으로 캐 창고에 쌓아야 했다. “농사는 하늘이 반이에요. 주말마다 비가 오니까 사람도 못 오고, 밭은 썩고.”

  

▲ 사진 = 계수밤농장

 

그럼에도 농장을 접을 생각은 없다. 그는 매일 기록을 남긴다. 군 시절부터 이어진 습관이다. 작황, 방문객 수, 날씨, 매출까지 꼼꼼히 적는다. 군에서 몸에 밴 기록 습관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진다. 농사 역시 경험만이 아니라 데이터를 통해 관리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자존심만 갖고는 안 되더라고요. 모르면 배우고, 젊은 사람한테도 물어보고, 검색도 하고.”

 

▲ 류태덕 대표 연대장 시절 - 군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류 대표는 건국대학교 축산과를 장학생으로 졸업했다. 이후 육군 장교로 33년을 복무했다. 비무장지대 철책선 중대장, 특수부대 대대장, 7사단 연대장 등 최전방에서 근무했다. “전방에서만 근무했죠. 군 생활은 자부심이 있습니다.”

 

▲ 사진 = 계수밤농장 주말 농장

 

전역 후 선택한 길이 농장 경영이었다. 지금도 새벽 7시 반이면 밭으로 나간다. 직원들과 함께 준비하고 현장을 직접 챙긴다. 나이가 77세이시지만 여전히 일선에서 움직인다. “몸이 허락하는 한은 계속해야죠.”

 

일부 땅은 주말농장으로 분양한다. 한 가족당 30~50평, 평당 6천 원 수준이다. 시세보다 저렴하다. “돈만 보고 하면 오래 못 가요. 농사는 사람하고 하는 겁니다.”

 

▲ 사진 = 계수밤농장

 

가을이 오면 밤송이가 떨어지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농장을 채운다. 약 1세기 가까이 이어진 땅 위에서, 군인의 기록 습관과 농부의 성실함이 겹쳐진다.

계수밤농장은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다.

가업의 역사, 정직한 방식, 그리고 세대가 함께 만드는 추억이 자라고 있는 공간이다.

 

블로그 https://blog.naver.com/rtduk21

작성 2026.03.28 17:41 수정 2026.03.2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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