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역사] 146. 류큐 왕국 중앙 행정의 핵심 모우시구치호우(申口方)

물봉행소와 함께 왕국을 떠받친 또 하나의 실무 행정 축

쇄지측(鎖之側), 류큐의 외교와 문교를 장악하다

박지두·쌍지고리·평등방, 항구에서 궁중과 사법까지 연결하다

류큐(琉球) 왕국의 중앙 행정을 이해하려면 재정과 조세를 담당했던 물봉행소(物奉行所)와 함께 신고구치방(申口方)을 살펴봐야 한다. 물봉행소가 국가의 경제적 기반을 관리했다면, 신고구치방은 외교와 교육, 사법과 치안, 왕실 공예와 신분 관리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비재무 분야를 폭넓게 관장한 핵심 행정기관이었다.

 

류큐 왕국의 신고구치방 설계도 = AI 생성

류큐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표정소(評定所) 아래에는 물봉행소와 신고구치방이라는 두 개의 주요 실무 축이 존재했다. 모우시구치호우 산하 관청의 수장은 친운상(親雲上) 관등의 고위 관료가 맡았으며, 이들은 주요 국정 현안을 심의하는 표15인(表十五人)의 구성원으로도 참여했다. 

 

모우시구치호우가 단순히 상부의 지시를 집행하는 조직이 아니라 정책 협의와 행정 집행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이다.

 

모우시구치호우의 4대 관청 가운데 대외 관계와 문교 행정의 중심에는 쇄지측(鎖之側, 사스누소바)이 있었다. 쇄지측은 명·청과의 책봉·조공 외교를 비롯해 일본 막부와 사쓰마 번, 조선 및 동남아시아와의 교섭에 필요한 문서 수발과 사절단 파견을 관리했다. 나하항의 외교 관련 조직인 나하리주쇼(那覇里主所)와 주요 포구의 주포재번(諸浦在番)도 지휘하며 해상 통상과 외교 업무를 담당했다.

 

쇄지측의 역할에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외교와 교육을 하나의 행정 체계 안에서 관리했다는 점이다. 류큐 최고의 교육기관인 국학(国学)을 비롯해 구메무라(久米村)의 명륜당(明倫堂), 슈리 3평등 학교소(首里三平等学校所), 나하와 토마리 및 각 촌락의 학교소가 쇄지측의 관리 아래 놓여 있었다.

 

특히 구메무라는 외교와 교육이 연결되는 중요한 공간이었다. 중국 도래인 후손 집단인 민인삼십육성이 거주했던 이곳에서는 외교 문서 작성과 통역, 항해술, 역법(曆法) 등을 담당할 인력이 배출되었다. 쇄지측은 구메무라방(久米村方)을 관리하면서 이들의 교육과 관직 등용에도 관여했다.

 

여기에 사족(士族)의 가보(家譜)를 관리하고 검증하는 어계주좌(御系図座)까지 쇄지측의 관리 영역에 포함됐다. 외교를 수행할 인재를 교육하고 관료로 등용하며, 신분 질서를 관리하는 기능이 하나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쇄지측이 외교와 교육의 중심이었다면, 박지두(泊地頭, 토마리지토)는 토마리항(泊港)을 중심으로 해상 관문과 민정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토마리항을 오가는 무역선을 관리하고 외국 표류민의 수속을 처리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행정 업무까지 폭넓게 맡았다.

 

박지두 산하에는 사찰과 종교 관련 업무를 담당한 사사좌(寺社座), 사회 구호와 관련된 대여좌(大与座), 감찰을 담당한 총횡목(総横目), 건축과 토목을 담당한 부청봉행소(普請奉行所) 등이 있었다. 항구 관리에서 종교, 구호, 감찰, 건축과 토목에 이르는 다양한 기능이 박지두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박지두의 역할은 토마리항 주변에만 머물지 않았다. 원문에 따르면 이 직책은 본래 북산(北山) 왕국의 옛 영역과 아마미 군도 등 도서 지역을 통제하던 성격에서 유래했다. 따라서 박지두는 바다를 통해 외부와 연결되는 항구를 관리하는 동시에 중앙 왕부와 지방 도서 지역을 이어주는 행정적 연결 고리이기도 했다.

 

왕궁 내부의 문화와 공예를 움직인 조직은 쌍지고리(双紙庫理, 소시코리)였다. 쌍지고리는 궁중 내부 사무와 왕실 자산, 포상, 궁중 공예와 관련된 업무를 담당했다.

 

서원(書院), 하고리(下庫理), 납전(納殿) 등 성 내부의 행정 공간을 관리했으며, 산하에는 궁중에서 사용하는 각종 물품을 제작하는 소세작봉행소(小細工奉行所)와 류큐의 대표적인 칠기 제작을 담당하는 패슬봉행소(貝摺奉行所)가 있었다.

 

이곳에서 생산된 공예품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물건이라는 범위를 넘어섰다. 왕실의 예술 기법을 바탕으로 제작된 고급 공예품은 중국 책봉사 접대와 하사품, 대외 교역 등에 활용되었다. 왕실 문화와 공예 기술, 그리고 외교가 하나의 행정 체계 안에서 연결된 것이다.

 

따라서 쌍지고리는 궁중 생활을 관리하는 부서인 동시에 류큐의 공예 기술을 국가 차원에서 보존하고 생산하는 문화 행정의 중심으로 기능했다.

 

외교와 교육, 항구와 민정, 왕실 공예가 각각 전문 관청을 통해 운영되는 동안 왕국 내부의 법질서를 담당한 곳은 평등방(平等方, 히라호)이었다. 평등방은 슈리(首里) 안팎의 치안 유지와 형사 재판을 맡았으며, 토지와 산림에 관한 관리 업무에도 관여했다.

 

특히 왕실 능묘인 타마우둔(玉陵)의 경비도 평등방의 중요한 업무였다. 이는 평등방이 일반적인 범죄와 분쟁을 처리하는 사법기관에 머물지 않고 왕실의 상징적 공간까지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모우시구치호우의 특징은 쇄지측·박지두·쌍지고리·평등방이 각각 독립적인 전문 업무를 담당하면서도 하나의 중앙 행정 체계 안에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쇄지측은 외교와 교육, 신분 관리를 연결했고, 박지두는 항구와 민정, 지방 통제를 이어주었다. 쌍지고리는 궁중 문화와 공예 생산을 담당하면서 이를 외교와 연결했고, 평등방은 사법과 치안을 통해 왕국 내부의 질서를 유지했다.

 

여기에 각 관청의 고위 관료들이 표15인(表十五人)의 일원으로 국정 심의에 참여했다는 점을 더하면 모우시구치호우의 위치는 더욱 분명해진다. 각각의 부서가 맡은 전문 행정이 중앙의 정책 결정 과정과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구조 속에서 움직였던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물봉행소와 비교할 때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물봉행소가 재정과 산업, 조세를 관리하며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확보했다면, 모우시구치호우는 그 기반 위에서 외교와 교육, 사법, 치안, 민정, 왕실 문화와 공예를 실제 행정으로 구현했다.

 

류큐 왕국의 모우시구치호우(申口方)는 하나의 특정 업무만 담당한 관청이 아니라 국가의 비재무 행정을 여러 전문 분야로 나누어 운영한 중앙 행정 체계였다. 쇄지측(鎖之側)은 외교·교육·신분 관리, 박지두(泊地頭)는 항구·민정·지방 통제, 쌍지고리(双紙庫理)는 궁중 문화·공예, 평등방(平等方)은 사법·치안을 각각 담당했다.

 

그러나 이들 관청은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외교는 교육과 연결됐고, 항구 행정은 지방 통제와 이어졌으며, 왕실 공예는 대외 관계에서 활용됐다. 사법과 치안은 이러한 국가 운영의 내부 질서를 뒷받침했다.

 

결국 물봉행소가 류큐 왕국의 재정적 기반을 담당했다면 모우시구치호우는 그 기반 위에서 국가의 외교·문교·사법·문화 행정을 실제로 움직인 또 하나의 중심축이었다.

 

작성 2026.10.02 09:59 수정 2026.10.02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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